부동산기획기사

변함 없는 대한민국 1번지

중개사 2009. 5. 4. 22:48
[新서울견문록 ⑤-3 종로구]
변함 없는 대한민국 1번지
빌딩 숲으로 흐르는 역사와 전통의 멋

창덕궁 금원은 후원(後苑)·북원(北苑)이라고도 불린다. 동산과 숲을 조경으로 삼으면서 정자와 집칸을 배치한 원림(園林)의 풍취는 인공의 정원과는 격이 다르다. 금원의 숲은 도심의 숨통이다. 휴식처다. 서울대병원 본관(종로구 연건동)에서 내려다본 금원의 아름다움은 아찔하다. 올해 나는 틈이 날 때마다 이 원림에서 놀았다.

여름 금원은 맨발로 걸어야 참맛이다. 비가 오면 금상첨화. 바짓가랑이는 성가시고 발부리부터 올라오는 촉감은 짜릿하다. 발샅을 타고 오르는 대지의 느낌이 황홀하다. 비릿한 숲 향기는 숲이 깊어질수록 흙냄새를 만나 가라앉는다. 숲 비린내를 따라 오르면 금원의 으뜸 비경이라는 옥류천을 만난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소리가 경쾌하다.

“비원 숲은 예사로운 숲이 아니다. 보고 싶다고 해서 어느 때나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며, 가고 싶다고 해서 어느 곳이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과 짜인 노정에 따라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함께 거닐어야 조선 숲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비록 이런 부자연스러움과 불편함이 숲을 찾는 걸음에 뒤따를지라도, 비원 숲은 이런 속박을 상쇄할 만큼 매혹적이고 가치가 있다. 회색빛 거대 도시의 한가운데, 전형적인 우리 숲의 극치를 보여주는 비원 숲은 가장 한국적인 풍토성을 지녔다. 구릉이나 얕은 계곡과 같은 자연 지세를 최대한 이용해 나무와 물을 어우러지게 만들고, 이러한 자연 풍광과 조화를 이루도록 건물을 앉혔던 선조들의 여유가 엿보이는 곳이다.”(전영우 국민대 교수·산림자원학)

‘옛것’을 배신한 삼청동은 포스트모던하다.

북촌 한옥은 외국인 위한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명성

녹음이 깊어진 넓은잎나무가 만드는 ‘바다’는 무표정한 것 같으면서도 하루하루가 달랐다. 초가을 엽맥(葉脈)의 몸부림은 잠시였다. 초록 바다는 넓은잎나무가 만든 별천지로 바뀌었다. 숲 빛깔을 가슴에 담는 즐거움은 경이롭다. 신나무·복자기·당단풍·단풍이 꾸며낸 금원의 가을은 정욕을 일으킬 만큼 탐난다.

겨울의 금원은 숲소리가 매력이다. 솔숲이 만드는 소리는 격이 다르다. 영혼을 깨우듯 숲 전체가 울린다. ‘쏴아~’ 하는 소리가 장엄하다. 취한정[翠寒亭·임금이 옥류천의 어정(御井)에서 약수를 마시고 궁으로 돌아가다 쉬던 곳]의 숲소리는 조상들이 왜 솔숲에서 태교를 했는지 가르쳐준다. 함박눈 온 날 금원은 ‘낙원구 행복동’이다.

돈화문에서 율곡로를 거슬러 오르면 계동이다. 계동엔 할아버지의 친척이 살았다. ‘계동 할머니’는 박하사탕, 바니사탕을 끼고 살았다. 할머니가 준 사탕은 달았다. 계동 현대그룹 사옥은 옛 휘문중학 교정이다. 계동은 조선왕조 때 상류층이 살던 북촌(北村)에 속한다. 북촌은 지금의 행정구역으로는 계동 재동 가회동 원서동 안국동 사간동 소격동 삼청동이다.

북촌의 한옥은 ‘feeling Korea’의 매혹적인 첨병이다.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활용되는 계동의 락고재(樂古齋). 이곳에서 외국인들은 한국의 선비문화, 그 속에 담긴 풍류에 흠뻑 빠진다. 한옥을 새로 지어 일본의 료칸처럼 한국을 상징하는 숙박시설로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문화는 ‘보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더 매력적이다.

안국역에서 가회동으로 이어지는 가회로엔 헌법재판소가 섰다. 언덕길을 오르면 내로라하는 인사들의 저택이 이어진다. 그리고 한옥마을. 돌담 너머로 보이는 창덕궁의 풍광이 눈부시다. 가회동 31번지는 연인들에게 사랑받는 골목길. 영화 ‘비몽’(김기덕 감독, 2008년)에서 란(이나영 분)이 옛 연인의 집을 찾아 걸은 곳이다.

옛 정취 풍기던 삼청동 젊은이의 거리로 변신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면 삼청동이다. 옛 정취가 고즈넉하던 이곳은 젊은이의 거리로 변모했다. ‘크라제버거’ ‘던킨도너츠’ 같은 프랜차이즈 업체도 들어섰다. 한옥 스타일의 격자무늬로 외부를 꾸미고 한글로 쓴 간판(더 커피빈 앤 티리프)을 내건 ‘커피빈’은 삼청동의 오늘―한국문화, 서구문화가 조화롭게, 그러면서도 안타깝게 어우러졌다―을 상징한다.

오랫동안 삼청동을 지킨 ‘진선북카페’를 끼고 북쪽으로 돌면 청와대 앞길이 나온다. 세종로 1번지에 터를 잡은 청와대는 한국에서 가장 너른 마당을 가진 집. 청와대를 지나 조선의 정궐(正闕)인 경복궁(景福宮) 돌담을 따라 걸으면 통의동이 나온다. 통의동의 랜드마크는 열린책들 사옥 ‘더 소설’.

통이동과 잇닿은 부암동은 종로구의 보석이다. 문화 밸리다. 삼청동이 ‘옛것’을 배신했다면, ‘서울 속 산촌’ 부암동은 ‘옛것’을 보듬으면서 진화한다. ‘대성이용원’ ‘고은미용실’이라는 간판이 붙은 오래된 이발소와 뷰티숍, 1960년대식 간판을 내건 낡은 가게와 문화공간이 잇대어 서 있다. 생커피콩을 직접 볶고, 묵힌 뒤 갈아서 내놓는 ‘클럽 에스프레소’(북악산길 삼거리)의 커피가 향기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