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기획기사

아련한 청량리역 추억, 노년의 都心‘회춘 프로젝트’

중개사 2009. 5. 4. 22:21
[新 서울 견문록 ③-4|동대문구]
아련한 청량리역 추억, 노년의 都心‘회춘 프로젝트’

1970년대 후반 재개발된 연립주택들이 개발의 그림자에 묻혀 흉물스럽게 변했다.

정릉천변 새마을동네

“뭔 천이 뭔 천이여, 그냥 개천이지. 우리는 그렇게 알고 살았어.”

제기동을 남북으로 가르는 내부순환도로 아래를 흐르는 개울이 정릉천이다. 이 개울 좌우에는 낡고 오래된 연립주택이 줄지어 있다. 언제인지 기억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살았다는 70대 할머니는 평생 집 옆으로 흐르는 개울 이름도 모르고 지내왔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든데 그걸 알아서 어디에 써먹겠냐”는 퉁명스런 할머니의 반응에 잠시 머쓱해졌다. 용기를 내 한마디 더 물어봤다.

“여기는 재개발 안 해요?”

“우리는 관심 없어. 세 사는데 개발하면 쫓겨나기밖에 더하겠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개울을 따라 길게 늘어선 도로를 떠받치는 시멘트 구조물 그늘 아래 허름하기 짝이 없는 연립주택들, 그 앞에 모여 앉아 가을 햇볕을 쬐는 70, 80대 노인들의 모습이 저 멀리 빼곡히 올라간 아파트와 묘한 대조를 이뤘다.

27년째 이곳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윤순석 약사에 따르면 과거 이 지역은 대부분 천막과 판자촌으로 이뤄져 있었다. 서울 도심에서 밀려나고 청량리시장과 청량리역 주변에서 하루살이를 하는 극빈층이 주를 이뤘다는 것. 그러다 1978~79년 정부 차원의 도시 정비사업을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개발됐다. 한때 이 지역은 ‘새마을동네’ 시범지구로 지정돼 전국에서 견학을 왔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주변 도시와 달리 이곳은 30년 전 그때 그 시간에 멈춰 있는 듯했다.

걷고 싶은 거리(왼쪽), 영휘원(가운데), 홍릉수목원.

홍릉수목원 · 걷고 싶은 거리

청량리역을 뒤로하고 홍릉길을 걷다 보면 파란만장했던 조선 말 역사의 흔적들과 만날 수 있다. 영휘원은 고종황제의 후궁 순헌귀비 엄씨의 묘소다. 명성황후 민비의 시위상궁이던 엄 상궁으로 더 유명하다.

엄 귀비는 1895년 을미사변 때 민비가 일본군에게 시해되자 위기에 처한 고종을 러시아공관으로 옮기도록(아관파천, 俄館播遷)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휘원 안에는 엄 귀비의 손자이자 영친왕의 아들 이진의 묘인 숭인원이 함께 있다. 이진은 일본의 볼모로 끌려갔던 영친왕과 일본 황족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 이방자) 여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생후 1년 만에 사망했다.

능은 소박하면서 한적했다. 가을바람에 갓 떨어지기 시작한 낙엽들이 외로움을 더했다. 높고 청량한 하늘과 따스한 햇살은 애처롭고 슬펐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대한제국 그때, 그 시절도 지금과 같았으리라.

세종대왕기념관을 지나 홍릉길 끝에는 홍릉수목원이 있다. 이곳엔 한때 명성왕후 민비의 무덤 홍릉이 있었다. 이 일대 도로와 지명에 홍릉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명성왕후 무덤은 1919년 고종 사후 현재의 경기 남양주 금곡으로 옮겨갔다. 그 자리에 대신 임업시험장이 들어섰다.

그 이후 능 주변의 산림은 버드나무와 오리나무, 고산식물 등 수목원으로 발전해 관리돼오다 6·25전쟁 당시 대부분 소실됐다. 지금 울창하게 남아 있는 나무 대부분이 전쟁 직후인 1960년대부터 심어진 것들이다. 수목원은 일주일에 일요일 하루만 개장하다가 올해 5월부터 토요일에도 연다. 단, 교육 목적이라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다.

홍릉수목원을 등지고 오른쪽 길은 고려대로 이어지고, 왼쪽 길은 경희대와 맞닿는다. 지나는 차들이 별로 없어 길은 호젓하다. 큼지막한 은행나무들이 늘어선 이 길은 서울에서 선정한 ‘걷고 싶은 거리’ 중 하나다. 가을날씨가 완연한 요즘, 나뭇잎들이 저마다 노랗게 가을나들이를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