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오? TV에서 말은 많이 들었는데, 저는 그런 거 잘 못 느끼겠어요. 하하.”
▶지난 7일 밤 11시쯤 건대입구역 맛의 거리에 발 디딜 틈 없이 모인 사람들이 이 지역 상권의 호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앞에서 분식 노점상을 하는 A씨는 “하루 종일 여기 있다 보면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라며 “어느 때는 하루 최대 20만원까지 번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10만원가량 번다는 A씨의 한 달 수입은 때로 300만원을 훌쩍 넘긴다. 재료비 등을 빼고 한 달에 200만원은 기본으로 집에 가져간다.
2006년 한국노동정책이론연구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점상의 한 달 평균 순수입은 150만원 이하다. 건대입구 노점상들은 평균 순수입보다 30% 이상을 더 버는 셈이다. 2년간의 시간 차가 있지만, 불경기와 노점상 철거정책에 따라 노점상 평균 수입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이뿐 아니다.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쪽에 위치한 대다수의 상점은 불황을 모르고 산다. 그만큼 사람이 많이 모이고 장사가 잘된다는 얘기다. 아무리 주변에서 “불경기라 죽겠다, 죽겠다”해도 건대입구역 주변 상권만큼은 불경기 한파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8월 5일 오전 11시. 건대입구역 2번 출구 쪽 ‘건대 맛의 거리’라 불리는 먹자골목 상가들은 여느 상권처럼 한가했다. 하지만 정오를 약간 넘기자 ‘건대 맛의 거리’ 앞쪽에 위치한 식당에는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빈 자리가 없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순두부 전문점, 닭갈비집, 족발집 등에는 손님 출입이 잦았다.
성수역 아파트형 공장에서 근무한다는 한 근로자는 “성수역 인근에는 마땅한 식당이 없어 운동도 할 겸 걸어와 이 지역(건대입구역) 식당을 자주 찾는 편”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지하철로 10분 거리에 있는 한양대역 왕십리 상권은 건대입구역 상권과 완전 다른 모습을 보였다.
▶자정이 넘어서자 손님을 태우려는 택시들이 맛의 거리 앞에 줄지어 서 있다. |
대학 상권의 가장 큰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방학 시즌 불황기를 그대로 맞고 있었다. 몇 명씩 띄엄띄엄 지나갈 뿐이었다. 어느 식당을 봐도 쉽게 빈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주인 말대로 파리를 날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식당에서 4개월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이은영씨는 “학기 중과 달리, 요즘은 밤에도 손님이 많지 않은 편”이라고 전했다.
다음 날인 8월 6일 밤 10시30분. 건대 맛의 거리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평일 저녁임에도 주말 저녁을 방불케 했다. 건대 맛의 거리에 위치한 편의점 관계자는 “일주일 내내 오후 7시를 넘어가면 이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로 거리가 북적인다”고 말했다.
실제 인근지역 호프집, 족발집, 닭요리집 등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인근 H공인 관계자는 “음식점과 주점의 경우 저녁 6~7시 이후부터는 가게마다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성업 중”이라고 전했다.
대학 상권답지 않게 유동인구가 많고 소비에 인색하지 않은 계층이 많이 유입되는 까닭에 늦은 시간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상점 곳곳엔 ‘주방 아주머니 급구’ ‘아르바이트생 모집’ 등의 메모를 쉽게 볼 수 있었다. D주점을 운영하는 사장은 “현재 아르바이트생이 3명이나 있지만 손님이 많아 일손이 부족하다”며 “1명을 더 뽑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주점은 1년 전과 비교해 매출이 20%가량 뛰었다고 한다. 새로운 메뉴로 우리나라 전통주와 퓨전요리 안주 도입 전략이 주효했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덧붙여 “이 인근 주점들도 매출이 대부분 10~20%가량 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식당, 주점뿐만 아니다. 패션, 커피 전문점, 액세서리 매장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거대한 복합상권으로 재탄생
이 매장 이윤아씨는 “젊은 고객이 끊이지 않는데다 상권이 점차 커짐에 따라 유동인구가 많아져 괜찮은 실적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커피 전문점인 엔젤리너스와 던킨도너츠도 비슷한 실적을 보이고 있다. 엔젤리너스는 지난해 7월과 비교해 매출이 120%나 뛰었다고 한다. 전국 123개 엔젤리너스 매장 중 6위다. 하지만 매출 상승률은 전국 1, 2위를 다툰다고 한다.
던킨도너츠도 같은 기간 매출 상승률 20% 이상을 기록하며 꾸준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던킨도너츠 오승철 차장은 “원래 상권이 강했던 명동이나 강남 지역 매장과 비슷한 매출 상승률을 보이고 있어 이제 건대입구역 상권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대입구역 상권이 점점 커지자 택시와 버스업계도 유동인구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서울 각지와 분당, 하남 등 경기도 일대 귀가 손님을 잡겠다는 것이다. 같은 날 밤, 자정이 다가오자 건대 맛의 거리 입구에는 택시들이 줄지어 섰다. 자정을 넘기자 한껏 취한 사람들이 하나 둘씩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그렇게 20여 분이 지났지만 택시 줄은 끊이지 않았다. 택시 운전기사 주명수씨는 “예전에는 강남이나 종로를 가야 장거리 손님을 태울 수 있었지만 요즘은 건대입구역에서도 장거리 손님을 쉽게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강남이나 송파에 근거지를 둔 택시 기사들이 귀가가 쉽고 돈벌이가 된다는 이유로 건대입구역 상권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버스도 노선 신설과 변경 등으로 승객 잡기에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9월 경기고속이 만든 단국대(죽전캠퍼스)와 건국대를 경유하는 102번 버스다.
이 버스는 분당을 경유한다. 경기고속 관계자는 “시장 조사 결과, 건대 상권이 번창하고 있고 분당이나 용인으로 귀가하는 승객이 많은 것으로 판단돼 이 노선을 신설했다”고 설명했다.
인근에서 공인중개소를 운영하는 장성구 대표는 “스타시티 상업시설이 모두 입점하면 유동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며 “앞으로 건대입구역 주변은 백화점·극장·먹자골목·로데오거리 등 수요를 끌어들일 요소를 모두 갖춘 거대 복합상권으로 재탄생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