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는 철강, 정유 등과 함께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된다. 개발도상국 등 경제발전이 급속히 이뤄지는 국가에서는 특히 건물을 짓고 각종 구조물 및 도로 등을 건설하는데 시멘트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산업재다. 철강이 ‘산업의 쌀’이라고 한다면 시멘트는 ‘산업의 육체’로 비유될 만큼 긴요하다. 우리나라도 경제개발 초기 단계인 1960년대에 박정희 정권 당시 국가시책과 맞물리면서 시멘트 산업이 호황기를 맞았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시멘트 공장이 준공되면 직접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친필로 사인까지 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시멘트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기업체로부터 공장 건설 프로젝트 신청을 받는 등 큰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당시 범국가적으로 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건설공사가 많아 대통령이 시멘트에 많은 관심을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수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멘트산업은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후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쌍용양회, 성신양회 등 국내 7개 시멘트 업체의 지난 상반기 평균 공장가동률은 59.8%였다. 이는 1997년 이후 하락하기 시작해 올해 최저치를 경신한 것이기에 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는 중이다. 성신양회도 ‘천마표 브랜드’를 통해 승승장구했으나 1997년 이후부터 어려움에 빠져들었다. 성신양회는 1997년 당기순이익 -78억원에서 1998년 -913억원 등 2000년까지 적자행진을 이어갔다. 이후 회사 합병, 공장 매각 등으로 차입금 상환에 주력해 2004년 439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2005년 -139억, 2006년 -390억, 2007년 -963억, 2008년 -788억 등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9년에는 구조조정으로 147억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이듬해부터 다시 적자로 전화돼 오다 지난해 31억원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앞서 지난 1994년 창업자 고 김상수 회장이 타계하면서 장남 김영준이 2대 회장직에 올랐다. 올해 김 회장의 장·차남이 수석부사장과 이사로 각각 승진하면 3세 경영이 시작되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성북동에 910㎡(약 275.3평) 가량의 토지 위에 단독주택을 한 채 소유하고 있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주택의 가치는 약 69억원 가량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스카이데일리가 성신양회의 성장배경과 경과 및 지배구조, 경영현황, 3세 지배구조 등을 취재했다. ![]() |
박정희 시멘트에 훨훨 날은 ‘왕년의 천마표’
[부촌 성북동 명사들<32>]-김영준 성신양회 회장…이익구조 위험속 3세경영
시멘트는 철강, 정유 등과 함께 국가 기간산업으로 분류된다. 개발도상국 등 경제발전이 급속히 이뤄지는 국가에서는 특히 건물을 짓고 각종 구조물 및 도로 등을 건설하는데 시멘트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산업재다. 철강이 ‘산업의 쌀’이라고 한다면 시멘트는 ‘산업의 육체’로 비유될 만큼 긴요하다. 우리나라도 경제개발 초기 단계인 1960년대에 박정희 정권 당시 국가시책과 맞물리면서 시멘트 산업이 호황기를 맞았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시멘트 공장이 준공되면 직접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친필로 사인까지 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박 대통령은 시멘트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기업체로부터 공장 건설 프로젝트 신청을 받는 등 큰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당시 범국가적으로 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대규모 건설공사가 많아 대통령이 시멘트에 많은 관심을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수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은 시멘트산업은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후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급감으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쌍용양회, 성신양회 등 국내 7개 시멘트 업체의 지난 상반기 평균 공장가동률은 59.8%였다. 이는 1997년 이후 하락하기 시작해 올해 최저치를 경신한 것이기에 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는 중이다. 성신양회도 ‘천마표 브랜드’를 통해 승승장구했으나 1997년 이후부터 어려움에 빠져들었다. 성신양회는 1997년 당기순이익 -78억원에서 1998년 -913억원 등 2000년까지 적자행진을 이어갔다. 이후 회사 합병, 공장 매각 등으로 차입금 상환에 주력해 2004년 439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나 2005년 -139억, 2006년 -390억, 2007년 -963억, 2008년 -788억 등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9년에는 구조조정으로 147억원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이듬해부터 다시 적자로 전화돼 오다 지난해 31억원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앞서 지난 1994년 창업자 고 김상수 회장이 타계하면서 장남 김영준이 2대 회장직에 올랐다. 올해 김 회장의 장·차남이 수석부사장과 이사로 각각 승진하면 3세 경영이 시작되고 있다.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성북동에 910㎡(약 275.3평) 가량의 토지 위에 단독주택을 한 채 소유하고 있다.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주택의 가치는 약 69억원 가량에 달한다는 설명이다. 스카이데일리가 성신양회의 성장배경과 경과 및 지배구조, 경영현황, 3세 지배구조 등을 취재했다


전통의 부촌 성북동에는 정·재계 인사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앞서 1962년 이전까지만 해도 시멘트 산업은 동양시멘트와 대한양회(현 쌍용양회 전신) 등 두 축이 이끌어 갔으나 정부정책에 힘입어 시멘트 공장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게 된다.

고 김상수 회장은 경제개발계획 2차 계획이 시작될 당시 조선해탄공업사와 김천석탄공업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성신화학을 세운다.

특히 업계에서는 외환위기전 6호 킬른 증설에 따른 4000억원이 넘는 투자가 금융부담으로 돌아오며 회사를 존폐위기로까지 몰고 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2004년 상반기부터 심화된 내수 경기 침체로 인해 건설경기의 상승세가 둔화되면서 시멘트 산업도 영향을 받게 됐다.

김영준 성신양회 회장의 장남 김태현 성신양회 수석부사장은 성신VINA의 수석 부사장을 겸직하고 있다.

아울러 2012년 1월부터 12월까지 단양, 부강 등 2개 시멘트 생산공장에서 1일 평균 3만8400t, 연간 1267만t을 생산했다.(금감원 2013년 6월 반기보고서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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