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까, 업종 바꿀까” 상인들 ‘햄릿의 고민’
재개발 세운상가-문정동 새유통단지 ‘갈림길’
“조례로 전자·귀금속 지구 등 지정 필요” 지적도
한겨레
» 전반적인 경기하락으로 건축 행위가 감소하고 있지만 청계천변에선 신축·증축이 꾸준하게 일어나고 있다.
청계천 복원 1년(하)변화하는 천변 상권

판촉물 가게를 운영하는 정상균(55)씨는 15년 동안 몸 담았던 을지로2가가 재개발되면서 두 달 전 청계2가로 옮겨왔다. 정씨는 권리금 수천만원을 잃고 이사했지만 그래도 을지로 인쇄골목에 있던 동료들보다는 형편이 낫다고 했다. “준비가 안됐던 인쇄공장 주인들은 남의 공장 한쪽에 세를 드는 ‘모치코미’가 되거나 직원으로 들어갔다.” 정씨가 가게를 얻은 자리는 본래 소방·방재·배관자재상이 몰려 있는 거리로, 판촉물 가게가 들어선 것은 처음이다. 본래 소방기구를 팔던 주인은 매장을 접고 공장으로 철수했다. 정씨 옆의 파이프 가게는 6달 전 문을 닫았다. 건물 주인 서아무개(55)씨는 “청계천 복원 뒤 사람들이 모여들어 파이프 가게보다는 카페·음식점이 적당할 것 같아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임차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블록 모퉁이에선 건물을 부수고 터파기 공사가 진행중이다. 천변 가게 뒤편엔 모텔들이 솟아 올랐다.

청계천 복원 1년. 청계2가의 풍경은 천변 상권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지난 7월 펴낸 <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시구조·형태변화 모니터링 연구>를 보면 2002~2006년 천변 일대에선 313건의 건축 행위가 일어났는데 신축·증축 전엔 대다수가 산업관련 점포(127건·40%)였지만 용도변경 이후엔 절반 이상이 근린생활시설(182개·58.1%)로 바뀌었다. 업무시설이 35건(11.2%), 주거시설이 27건(8.6%), 숙박시설이 19건(6.1%)으로 변경돼 앞으로 이 지역 상권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청계천변 상인 10% 가량이 문정동 동남권유통단지로 이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는 유통단지가 조기 활성화되도록 문정동에 가게를 분양으면 청계천에 가게를 이중으로 내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천변 상인들은 업종·자산·가게 입지 등을 따져 ‘떠나는 것’과 ‘남는 것’을 놓고 주판알을 열심히 튕기고 있다.

청계천에서 기름밥을 26년째 먹는다는 오정환(46·정밀기계업)씨는 유통단지 이주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근 세운상가 재개발이 본격화되면 떠날 수밖에 없다.” 반면 소방기구를 판매하는 신아무개(53)씨는 반신반의하고 있다. “용산전자상가도 자리잡는 데 10년 걸렸다. 문정동 상가가 정착하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그때까지 청계천에도 가게를 유지하고 있어야 안심이 될 것 같다.” 2003년 청계천상인연합회 회장을 맡아 서울시와 청계천 복원공사에 ‘대타협’을 이뤘던 이웅재씨는 최근 ‘청계천을 사랑하는 상인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이씨는 “상가 리모델링, 업종 전환 등 전문가들의 자문을 얻어 청계천 상권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서울시에도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주도록 대화 창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남권유통단지 이주 외에 산업구조 변화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임희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산업네트워크가 형성돼있는 청계천변이 유흥·향락용도로 변화하지 않도록 세심한 토지이용관리가 필요하며 물리적 기반시설 개선에 공공의 개입이 절대적”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정순구 산업국장은 “청계천변의 영상·패션·전자·인쇄·출판·귀금속 등은 도심 산업클러스트로 가꿔나갈 업종으로 기반시설 지원·세금감면 등이 가능한 산업개발진흥지구로 지정할 수 있도록 조례 제정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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