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간 인사동 휩쓴 화마들, 상권도 불태웠다

일명 ‘피맛골’이라 불리는 종로 인사동은 조선시대 서민들이 종로를 지나는 고관들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피마(避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서민들이 이용하던 길이라 술집과 음식점이 번창했던 골목으로 원래는 종로 1가(청진동)부터 종로 6가까지 이어졌으나 현재는 종로 2~3가 사이에 일부만 남아 해장국, 생선구이, 낙지볶음, 빈대떡 등을 파는 음식점이나 술집 등이 영업을 하고 있지만 상권이 거의 죽어있는 상태다. 이번 화재는 종로 2가 공평동에서 발생했다.

“서울 한복판인데 왜 이렇게 죽은 채로 놔뒀어. 빨리 재개발이나 하지. 보기 험하네.”

한 행인이 인사동으로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을 지나면서 탄식을 내뱉었다. 이 부근은 지난 17일 저녁 화마가 휩쓸고 간 인사동 255번지 뒤편으로 익일인 18일 오후까지 매캐한 냄새가 인사동 인근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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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먹자골목’으로 불리는 화재 현장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육미’ 등 유명 음식점을 포함한 음식점 12개 점포가 전소되고 5m 남짓한 골목으로도 검은 잔해가 쏟아져있었다. 근처를 지나던 시민들의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못했다.

대형 화재는 이번 뿐만이 아니다. 짧게는 10여년부터 길게는 20여년까지 인사동은 크고 작은 화마(火魔)에 시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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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월 24일 저녁 11시 인사동 떡집골목 화재, 12개 점포 전소

-2002년 11월 12일 새벽 인사동 먹자골목 화재로 음식점과 술집 등 10여개 점포 전소(지도 2)

-2003년 5월 27일 새벽 3시 인사동 131-101번지 일대 일명 피맛골 화재로 10여개 점포 전소(지도 3)

-2008년 12월 13일 새벽 5시 인사동 금좌빌딩 방화 추정 화재

-2010년 4월 23일 오후 6시 인사동 234번지 음식점 화재

-2010년 10월 13일 출근시간대 인사동 YMCA 뒷골목 화재

-2013년 2월 17일 저녁 8시 인사동 255번지 화재로 19개 점포 전소(지도 1)


위의 화재사고 중 몇몇은 점포 10여개 이상을 전소시킨 대형화재로 종로 상공에 거대한 검은 연기를 뿜어냈고, 이후 해당 지역의 상권은 기존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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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왼쪽은 피맛골 주점촌 입구. 건물을 다시 짓지 못해 포장마차로 영업을 하고 있는 모습. 가운데는 한산한 주점촌 골목 모습. 오른쪽은 조선시대의 교회 건물로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 130호로 지정되어 있는 승동교회의 주차장에서 바라본 피맛골 주점촌 건물들. 화재가 났던 모습을 채 가리지 못한 채로 출입구 정도만 막아놓은 채로 사실상 방치되어 있음.]

2002년과 2003년의 대형화재는 10여개 이상의 점포를 전소시켜 골목을 거의 초토화시켰고, 일부 점포는 화재보험 가입으로 보상을 받아 재건축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일부 점포는 건물 입구만 막아놓은 채 거의 폐허 상태로 남아있다.

물론 상권을 죽인 것은 화마뿐만이 아닐 것이다. 재개발 기대감 역시 인사동 피맛골 상권을 ‘살해’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인사동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이번에 불이 난 곳은 재개발 얘기가 흘러나오는 지역 중 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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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왼쪽은 이승철 위원장이 영업하던 점포 입구 모습. 가운데와 오른쪽은 공평 2구역으로 ‘개인사유지입니다. 무단침입시 고발조치함’이라는 표시와 함께 입구가 봉쇄되어 있는 건물들.]

종로구청 앞에서 3년째 노상투쟁을 벌이고 있는 종로 공평상가 대책위원회 이승철 위원장은 이번 화재가 사고가 아닌 방화일수도 있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공평 2구역에서 노래주점을 하고 있던 이 위원장은 개발사에 의해 2010년 5월 30일 ‘개인사유지’를 명목으로 내쫓겼고, 오늘도 종로구청 앞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 화재는 공평 1, 4지구에서 난 것으로, 해당 지역은 최근 재건축·재개발 등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방화라는 물증이 확실하게 잡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의심을 완전히 지우긴 어렵다는 설명이다.

특히 몇십년 동안 별탈없이 영업을 해오던 음식점에서 영업도 하지 않은 일요일 저녁에 갑자기 불이 났기 때문에 더욱 의심이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 화재가 난 먹자골목의 일부 점포는 화재보험이 가입되어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보상을 받을 길이 막막하다. 보험금도 건물상태나 시설물의 감가상각을 하면 기존처럼 영업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은 아닐 것으로 보인다.

한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이번 화재로 전소된 인사동 건물들 중 일부 음식점이 최대 2억5000만원을 보상받을 수 있는 화재보험에 가입되어 있기는 하지만 감가상각에 들어가면 보상금액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보상을 적게 받거나 아예 못받게 된다면 피해를 입은 사업주들은 건물을 다시 짓거나 영업을 재개할 방법이 없어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해당 지역 재개발 시행사 쪽은 화재가 나기 전보다 쉽게 재개발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방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6월 인사동 공평구역의 재개발 방식을 ‘대규모 철거재개발’이 아닌 ‘소단위 맞춤형’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고, 건폐율과 건물높이, 주차장 설치 등 건축기준을 완화해 기존 골목길을 최대한 유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이번 화재가 난 지역은 제외되어 사실상 방치나 다름없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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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피맛골 중 먼저 개발이 진행된 청진동(종로 1가쪽) 재개발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미 지난 2004년부터 시작된 재개발로 청진동 피맛골에는 현재 르 메이에르 종로타운이 들어서있고, 청진동 12-16지구 재개발은 GS건설이 오피스 빌딩을 지어올리고 있고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섰다.

서울 종로 도심 한복판의 숨겨진 폐허, 제 2, 3의 먹자골목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소방법 정비뿐만 아니라 다른 차원의 접근도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Posted by 중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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